오늘은 대전에 사는 친구와 광명에서 만나 밥을 먹었다.
친구가 12시 15분 도착인 기차를 타고 광멱역으로 온다고 하여 시간 맞춰 나가서 기다렸다. 그리고 나의 끝없는 타인에 대한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친구와 맛집에 가서 밥을 먹고 같이 노는 중에 나는 계속 생각한다.
'아 이렇게 말이 끊길 때 말을 이어나가지 않아서 나를 별로 안좋아하면 어떡하지?'
그리고 놀다가 나의 생각을 얘기하고 친구의 동의가 없을 때 또 나는 생각한다.
'아 내가 너무 자기계발 이야기만 해서 나를 허황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하지?'
그리고 친구가 얘기를 하는데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생각이 다른 거를 반박해서 기분이 나쁜가..? 어떡하지?'
친구가 집에 가는 기차는 19시 39분 차. 같이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서 나는 또 생각한다.
'나와 이렇게 오래있어서 나의 안 좋은 면을 보고 나와 함께 있어서 지루하다는 생각을 가져서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나는 오늘 친구와 함께하면서 하루종일 내 생각보다 친구의 기분을 생각한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끝까지 친구의 기차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19시 경에 2만원의 택시비를 내고 집에 간다.
같이 만나면서 생각할 때는 내가 이렇게 까지 신경쓰고 있는 줄 몰랐는데 쓰고보니 정말 타인의 기분을 과하게 생각하는 것 같긴 하다. 이 순간 외에도 대화 도중에. 걷는 도중에. 사진 찍는 도중에. 온통 내 친구의 기분만을 신경쓰고 있다.
친구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맞춤법 안맞추는 사람들 보면 너무 싫어."
"그건 윤석열이 잘했어."
나는 생각이 다른데 말하지 않았다. 괜시리 그녀와 생각이 다르다는 걸 알려서 기분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사진을 찍어주면서도 생각한다.
'아 사진 너무 못찍어서 앞으로 나랑 안 만나주면 어떡하지?'
사진 찍는데 부담감이 생긴다.
내가 이 정도로 타인의 기분을 신경쓰는 지 새삼 느낀다. 심지어 이 친구는 나와 한두달 본 친구도 아니다. 벌써 10년을 알고 해외여행도 여러번 간 이미 친한 친구이다. 이 마음의 근본은 어디서오는 걸까 생각해보자.
아마도 과거 고등학교 학창시절에 나와 놀던 친구들이 나와 놀아주지 않게 되었을 때, 나보다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하고 그 친구와 놀고 싶어했을 때, 나와 친했던 친구가 나와 짝꿍이 됐을 때는 싫어하고 다른 친구와 짝꿍이 되고 싶어할 때, 그런 순간들이 하나하나씩 쌓여서 나와 안 놀아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생성된 것 같다.
나는 현재에 살지만 나의 무의식은 아직도 과거에 허덕인다. 그 과거는 어떻게 해야 치유되고 나를 괴롭히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학창시절은 내 인생을 너무나도 괴롭히고 나를 슬프게 한다. 어떻게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은 깊은 구멍에 빠지는 느낌이다. 방법이 잘 보이지 않고 이 기나긴 고통을 제발 사라지게 하고 싶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나는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이 순간순간이 너무 답답하고 힘든 나머지 이 생각들이 사라질 수 있긴한 걸까 의심이 들고 힘이들지만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친구와 계속해서 친하게 지낼 것이고 이 상황은 변치 않을 것이다.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내가 소중한 것이 아니라 친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내가 멋있는 것이다. 그저 나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내 소중함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자. 과거의 나는 나지만 그 시간의 나일 뿐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와 다르고 나는 학습하고 깨닫는다. 그 사실을 잊지말고 과거에 얽메이지 말자.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내 삶은 과거에 의해 어떠한 영향도 받지 못한다. 나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주변에서 나의 과거를 가지고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나의 과거에 나 스스로 얽메이지 말자. 나에 대한 피해는 나에게 나온다. 그 피해를 현재의 행복으로 바꾸자. 현재의 행복은 미래의 나에게 소중한 추억일 뿐이고 현재의 고통은 미래의 나에게 소중한 깨달음이 될 것이다. 그러니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트라우마가 아닌 현재의 깨달음으로 사용하자.
나는 항상 현재를 가장 행복하게 살 것이다. 지금 그리고 오늘.